커피향 그윽한 이야기

러시아 혁명사

고독한예술혼 2011. 6. 21. 15:11


러시아 혁명사.

예전에 저희 오빠가 읽던 도서인데 제가 갖겠다고 우겨서 아직까지 소장하고 있는 책입니다.

러시아 혁명사를 다시 꺼낸 것은..

최소한의 권리도 지킬 수 없는 이 상황을더이상 참지 말아야할때인 것같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꼭 필요한 이론적, 역사적 준거점이 무엇일까 찾다가 혁명이라는 단어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연대를 중시하기 때문에 트로츠키가 강조한 혁명전략인공동 전선을 지지합니다.

확실히 트로츠키의혁명외교는 독일혁명을 일보전진 시킨 것입니다.

트로츠키는 말합니다.

"행진은 따로따로 그러나 파업은 함께."

끊임없이 공부하는 레닌도 무척 존경합니다.

레닌은 자본주의를 무시함에 의하여 현실을 유리시킨 이데올로기로 화한 나로드니끄(인민주의자)와,

농민을 경시하는 외래이데올로기, 멘셰비즘(소수파,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온건파의 사상)과의 사이에서

러시아의 현실에 꼭 들어맞는 러시아혁명의 전략과 전술을 창출했죠.

즉, 레닌은 나로드니끄에게서 그 혁명적 행동력을 섭취하고 농민중시를 계승했습니다.

여튼 뛰어난 지도자들과 전략가들로 이루어진 소비에트정권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으로

농민, 노동자 등 근로대중에 의해 10월 혁명이 일어났죠.

10월혁명의 결과는 트로츠키의 예언이 적중하여

프로레타리아에 의한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수행되고 공업에 관한 한 사회주의가 실현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평화를 획득할 수 있었던 소비에트 정권은 3년 정도에 참혹한 내란에 고통받아야 했죠.

볼셰비키정권을 자신들의 정부라 생각했던 노동자계급은 계속되어 온 내란에 도탄의 고통을 받게 되고,

당초의 정세가 냉각되기 시작하죠.

권력은 극소수의 볼셰비키당간부의 손에 장악되고 있음이 명백하게 되어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당간부의 독재라는 것이 알려지자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생활상의 불만은 심각화되어 갔죠.

이에 트로츠키는 노동자계급의 불만을 완화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관심을 높이고

소비에트정권과 프롤레타리아와의 일체화를 기도하려고 했죠.

하지만 레닌은 트로츠키의 견해를 배격합니다.

레닌에 의하면 소비에트정권은 프롤레타리아의 정권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정권입니다.

그러므로 소비에트정권을 구하는 길은 노동자계급에게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에게 양보하는 것입니다.

러시아는 4년간의 전쟁에서 경제가 엉망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레닌과 트로츠키의 다른 점을 알아야 합니다.

레닌은 러시아혁명을 우선으로 두고 세계혁명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했습니다.

반대로 트로츠키는 세계혁명으로부터 시작한 러시아혁명을 생각했죠.

그래서 소비에트정권에게 있어서 세계혁명은 사활의 중요성을 갖는 것으로 되었기 때문에

볼셰비키는 1919년 세계혁명에 대한 전략과 전술을 연마하죠.

사실 세계혁명으로 가는 길은 독일에 의해 결정될 운명이었습니다.

그이유는, 4년간의 전쟁에 의해 혁명에의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는 것이고,

독일에서 성공할 경우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내의 제민족은 독일의 뒤를 따라

중부 유럽일대가 혁명의 노도에 휩쓸릴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으로부터 스칸디나비아를 석권하고 나아가

아시아 10억의 피억압민족을 궐기 시키는 것은 필연이었죠.

그러나 독일혁명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혁명의 주체인 독일사회민주당은

개전과 동시에 평화정책에 의해 제국주의독일에게 혼을 팔아버렸기 때문에

진정한 혁명정당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며,

독립사회민주당내에서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중심으로 결성되었던 스파르타쿠스단이

대중적 기반을 못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말이 길어졌나 모르겠습니다.

사진 찍힌 책들 다 언급하려 했는데요..^^

다음부터는 짧게 쓸게요.^^

박노자씨는 대한민국 대학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대학교수는 또 하나의 코리안 드림이고 또 하나의 특권집단이라고요.

대학은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라고요.

우선, 상아탑의 노예라고 표현한 강사들,

박사과정을 갈망하면서도 ‘돈과 빽’ 때문에 좌절하는 젊은 인재들을언급했네요.

교수집단이 실제로 한국식‘관료주의적 재벌 자본주의’의 생산관계를 결정한다고 했네요.

쯧.가여운 대한민국..

시궁창에 쳐박아 놓은 듯한 대한민국을 위해무엇을 어떻게 해야현명한 것인지

박노자씨의 말로 생각해 보려 합니다.

"한국 정치인들이 정말 이토록 중세적일까?

그렇다기보다는 중세적인 통치방식을 왜곡해 선별적으로 이용한다고 봄이 더 옳을 터인데,

이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궁예나 견훤을 투표로 그 위치에 있게 하거나 물러나게 할 수도 없었을 텐데,

표에 목숨이 달린 현대판 '궁예'나 '견훤'들을 왜 간단한 투표로 퇴출하지 못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