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 뉴턴

커피향 그윽한 이야기 2005. 1. 9. 00:42

뉴턴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총명했지만,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아침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두 발을 흔들면서 몇 시간 동안 침대에 앉아 있었다고도 한다.

그는 케임브리지에 최초로 세워진 실험실이었던 자신의 실험실에서 정말 이상한 실험을 했다.한번은 가죽을 꿰맬 때 쓰는 긴 바늘을 눈에 넣고 돌리는 일에 재미를 붙이기도 했다. 그저 "안구와 뼈 사이에 가장 깊숙한 곳까지" 바늘을 넣어서 무슨 일이 생기는가를 보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또한 자신의 시각에 어떤 영향이 생기는가를 알아내려고 태양을 참을 수 있는 한 최대한 오랫동안 똑바로 쳐다본 적도 있었다. 두 경우 모루, 어둔 방에서 며칠을 지낸 후에야 시력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다행히도 심각한 후유증은 피할 수가 있었다.

그는 당시 수학의 한계에 불만을 느꼈던 학생 시절에 이미 전혀 새로운 형태의 수학이었던 미적분학을 만들었지만 27년 동안 아무에게도 그런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는 빛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바꾸어놓았고, 훗날 분광학(빛의 흡수와 방출을 이용해서 물질의 정체와 성질을 연구하는 분야)이라는 새로운 과학 분야의 바탕이 되었던 광학에서도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역시 30년 동안 아무에게도 그 내용을 말해주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총명했던 그에게 진정한 과학은 흥미를 가지고 있던 다양한 문제들 중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적어도 반평생 이상을 연금술과 아리우스주의(성 삼위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된 교리로 삼는다)라는 종교적인 관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는 솔로몬 왕의 사라져버린 성전의설계도를 연구하기도 했고, 원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스스로 히브리어를 공부하기도 했다.뉴턴의 서류 가방에는 광학이나 행성 운동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일편단심으로 비금속을 귀금속으로 변화시키려는 연구에 대한 것이었다. 1970년 뉴턴의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수은 함유량이 자연 수준의 40배를 넘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의 수은은 연금술사나 모자 또는 온도계 제조공 이외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금속이었다. 그가 아침에 떠올렸던 생각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던 셈이다.

1684년핼리(핼리혜성을 발견)가 뉴튼에게, 만약 태양에 의한 힘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면 행성의 궤도가 어떤 모양이 될 것 같으냐고 물어보았다. 아이작은 즉시 타원이 될 것이라고 대답했고 감탄했던 핼리 박사는 어떻게 그것을 알아냈느냐고 물어보았으나"왜 그러십니까? 계산으로 얻은 것입니다"라고 했을 뿐 그 계산결과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암을 고치는 방법을 발견했는데, 그비법을 적은 서류를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과 같았다. 핼리의 추궁을 받은 뉴턴은 다시 계산을 해서 보여주기로 약속하고 그의 걸작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완성해서 그 약속뿐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일을 했다. 뉴턴은그 책으로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되었고, 수학에서 그의 업적은 그 이전의 업적을 모두 합친 것과 같다는 평을 받았다.그 책은 천체의 궤도를 수학적으로 설명해주었고, 천체들을 그렇게 움직이도록 한 힘이라고 할 중력의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한 것이었다. 갑자기 우주의 모든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정도가 "각각의 질량에 비례하고, 둘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낸 것이 바로 뉴텬이다. 다시 말해서 두 물체 사이의 거리를 두 배로 하면, 둘 사이의 인력은 네 배만큼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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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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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식은 사실 인간이 밝혀낸 최초의 보편적인 자연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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