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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낱말의 우주
저자에 의하면,
말(언어)이란.. 인간이 이해한 우주와 인간이라는 우주, 이 두 우주의 실상을 동시에 비추어주는 거울이다.
저자는 그 언어들 중에서 110여 개의 중요 한자어를 선정해 그 쓰임과 의미, 만들어진 연원을 함께 추적해간다.
한자를 선택한 이유는, 우리 한국인의 것이기도 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 중 하나이기도 하며 한자어 낱말 하나하나가 '아이디어 또는 사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문자이기 때문이다.
한자는 고대와 현대 사이에 가로놓인 깊은 심연에도 불구하고,
고대와 현대를 잇는 무언가가 숨어 있다.
현대 동북아인의 마음 세계, 지각 양식의 세계, 관념 세계, 가치 체계, 삶의 세계 -
이 모든 '세계들'에 침전되어 있는 침전물로서 이 문자는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나는 도대체 어떤 인식 습관의 주체인가, 문화적 스타일의 주체인가, 어떤 문화 전통의 침전물의 영향 아래에서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들, 즉 '오늘날의 나는 왜 저렇게가 아니라 이렇게 인식하고 이해하고 말하고 행동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탐구에 오래 존속된 특정 단어, 특정 개념어의 탐구는 의외로 효자 노릇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우주에 관심이 많다.
어려서부터 천문학자가 꿈이었다.
내가 세운 가설을 두고 담임 선생님이 면박을 주는 바람에 나의 꿈은 사라졌지만,
덕분에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온 별자리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문학이라는 것과 더 밀접하게 되었다.
아직도 우주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많아서 '행성X'나 ‘글라제581d' 같은 단어에 광적으로 열광한다.
하지만 내 스스로가 왜 그리 우주에 관심이 많았는지 이유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나를 분석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어느 시대 어느 인간이고, 인간이라면 결국 똑같은 질문에 봉착해왔다. 그 질문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를테면, ‘나는 누구인가?’, ‘이곳은 어디(언제)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어떻게 이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존재와 자연의 근원과 시간과 삶에 관한 근본 질문이다. 우주를 캐묻는 자는 다른 이가 아니라 ‘여기 있는 나’를 물어보는 자이다.
그래. 나는 '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당연히 '우주'에도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그럼 도대체 왜 고대 중국인들은 우주라는 단어를 宇宙라고 했을까.
저자에 의하면 공간적 무한성을 상징하는 한자어가 宇라면, 시간적 무한성을 상징하는 한자어는 宙라고 한다.
또 오랜 기간 한자 문화권 사람들에게, 삶의 현상 세계 전체를 감싸 우리를 안온케 하는 ‘거대한 지붕’이 宇宙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원시 유학의 세계에서 우주라는 거대한 지붕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가치성과 도덕성으로 충만한 형이상학적 실체로 여겨졌다.
20세가 후반에서 21세기 초반에 이르는 동안,
우주학은 별로부터 방출된 분자들이 지구 생명체의 시작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아냈다.
인간 몸의 입자들의 기원이 별의 잔해라는 말이다.
지구 내 생명의 기원이 우주 자체라는 말은 지구가 더 큰 생태계에 이어지고 그 생태계에 열려 있고 그것의 생태학적 영향을 받는 하나의 작은 생태계라는 말을 함의한다. 우리 자신이 곧 지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주는 거대하고 거창하지만 지구 대기권 밖에서만 시작되는 공간이 아니라,
바로 여기 인간의 물리적 존재와 삶에 이미 가까이 와 있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만물에 이미 물리적으로 편만遍滿해 있는 것, 동시에 나를 만물에 이어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것의 일점一點이요 실질實質인 것이다.
존재에 대한 경이감을 느낄 수 있는 훌륭한 글이다.
한자를 통해 우주와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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