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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 최인호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문 앞에 다다랐다.
어? 이 집 우리 집 같지 않아. 문도.. 도어락도.. 전부 낯설다.
고개를 돌려 아파트 층수를 살피고 현관문에 붙은 동호수를 바라본다.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여니 여느 때와 같이 고양이가 나를 반긴다. 우리 집 맞다.
자메뷰(=미시감, 아주 익숙한 것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현상)다.
최인호 선생님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읽으며 내내 그 불쾌한 미시감이 느껴졌다.
자메뷰를 느껴본 사람은 알겠지만,
친숙했던 것들이 낯설게 다가올 때 무척이나 불안하고 불쾌하다.
더욱이 이 책에서는 그 끔찍하게 낯선 존재가 바로 ‘나’다.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의 내가 아니다. 금요일 밤의 그 미스터리한 한 시간 반에 걸친 의식의 공백 동안, 나는 알 수 없는 어떤 존재에 의해서 납치되었을 것이다.
K가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알람 설정 하지 않은 자명종의 울림, 낯선 아내, 자신을 보고 짖는 애완견, 그 전날 잃어버린 핸드폰과 기억에서 사라진 1시간 반.
토요일 아침 7시부터 삼일동안 K에게 모든 것은 낯설다.
본인이 매일 쓰던 스킨도 그 삼일 동안은 매일 다른 종류의 스킨으로 선반 위에 놓여진다.
대체 K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또한 무슨 일이 그 앞에 펼쳐질 것인가.
K는 고개를 끄덕이며 결론을 내렸다.
낯이 익다는 것은 속임수다. 낯이 익다는 것과 낯이 설다는 것은 이음동의어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은 잃어버린 길 위에서 끊임없이 헤매는 현대인과
우리가 맺고 있는 많은 관계의 부조리를 파헤친다.
또한 자아를 발견하고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림으로써 가능하다는 도가를 떠올리게도 한다.
고통스러운 암 투병 중 글을 썼기 때문에 그런가.
최인호 선생님이 청탁으로 쓴 연재소설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쓴 최초의 전작소설이라서 그런가.
글을 읽는 내내 마음 한 편이 자꾸 아파오며, 내 삶의 의미와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휴..
크리슈나 무르티의 무아 순수의식의 깨달음을 생각하며
이 책 서두에 나온 성경 [탈출기]를 옮겨본다.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그들이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터인데,
제가 어떻게 대답하여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나는 곧 나다.”
P.S..
몸의 고통을 인내하며 선생님의 작품을 기다려온 우리에게 멋진 작품을 보여주신 최인호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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