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의 꿈

커피향 그윽한 이야기 2004. 11. 21. 07:05

어부의 꿈 -남진우

호리병 속에 같힌 마인은

말이 없다 잔잔한 바다 양탄자처럼 펼쳐진 하늘

그물을 끌어올린 어부는 잠시

뱃전에서 숨을 몰아쉰다

모든 예언은 거짓이거나 농담이다

태양아래 새로운 것은 오직 태양뿐

눈부신 빛살에 떠밀린 파도는 묵묵히 밀려왔다 밀려가고

전설을 가늠하듯 어부는 호리병을 치켜든다

어떤 마법이 그를 다른 해안에 데려다줄까

모든 소원이 헛되이 져내린 뒤

호리병에 담긴 마지막 한 방울 술까지 다 마신 다음

어부는 적막한 해변 낡은 오두막집에

홀로 쓰러져 잠든다

깊고 어두운 꿈속

호리병을 열자

검은 연기와 함께

마인이 솟아오른다, 솟아올라

이제 내 소원을 드어주마 말한다

제발 이 삶 바깥으로 나를 데려가줘

내가 꾸는 꿈이 더 이상 나를 속이지 않는 곳으로

꿈속의 호리병이 내게 소원 따윌

명령하지 않는 그곳으로

아득한 바다

양탄자처럼 펼쳐진 하늘 아래

호리병은 사라지고

어부 홀로 텅 빈 그물을 들여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