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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토닉 러브
플라토닉 러브란,
순결한 사랑이나 짝사랑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지만,
사실 필리아(사랑)와 소피아(지혜)의 합성어인 '필로소피아'가 함축하고 있는 사랑을 뜻한다.
'필로소피아'라는 단어가 나왔으니 우선피타고라스의 입을 통해 '철학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자.
기원전 518년 어느 날 피타고라스가 올림픽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 앉아 있던 필로스의 왕자가 그에게 물었다.
"피타고라스여! 당신은 아는 것이 많은데 당신이 하는 일은 무엇이며, 그런 사람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나는 철학자입니다."
피타고라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왕자님, 인생이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운동경기와 비슷합니다.
여기에는 재물을 구하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이는 명예와 영광을 얻으려고 야망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에는 많지는 않지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는 재물을 탐하고,
어떤 이는 권력과 권세를 향한 맹목적 정열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가장 현명한 이는 삶 그 자체의 의미와 목적을 탐구하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연에 숨겨진 비밀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이들이 바로'철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 입니다."
플라톤은 말했다.
"지혜를 사랑하면 지혜로워지며, 지혜로워지면 결국 행복에 이른다"
여기서 지혜에 대한 '사랑'이란..
무엇인가가 완벽하게 채워져 정체된 상태로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무언가를 향해 '되어가고 채워가고자 하는 영적인 힘'을 의미하는 말이다.
즉, '사랑'이란,
아름다움, 지혜로움, 선함과 같은 범주에 드는 말이 아니라,
아름답게 되려 하고, 지혜롭게 되려 하며, 선하게 되려는 실천적 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의 아름다움은 궁극적으로 물리적 세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마음의 세계에 속하는 아름다움이고,
이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안목은 육신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통해서 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플라톤의 <향연>을 보자.
"아름다움은 사람의 얼굴이나 손이나 그 밖의 신체 어느 것으로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또 말이라든가 지식 같은 것으로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또 그 밖의 어떤 것, 이를테면 생물이라든가 땅이나 하늘 어느 것으로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자체만으로,
그 자체와 함께 있으며,
단 하나의 영원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이 아름다움 자체를 나누어 가질 때 아름다워집니다.
그래서 다른 것들은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지만,
아름다움 그 자체는 늘거나 줄지도 않고,
또 다른 것으로부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성질은'아름다움'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플라톤은 '좋음'도, '훌륭함'도, '지혜로움'도, '참됨'도, 그리고 '정의'도 이와 같다고 했다.
그는 물질이나 사물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이와 같이 독특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을 '이데아', 또는 '형상'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때, 과연 나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우리는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가지고 있는 나만의 아름다움이 이것인가 자신을 되돌아보며,
행여나 아니라는 판단이 서먼 다시이제라도 발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고피디님(www.gnaru.com)이 항상하시는 말씀이 있다.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 그것만 잘 살려도 이젠 먹고 살 수 있게될 것이라고.
자신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고.
이제 자신만의 고유한 지식만 가지고도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사회가 열릴 것이라고.
새들도 제 노래를 부르다 간다고 한다.
꽃들도 자신의 색과 향기를 피우다 간다.
우리는 자신의 고유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유혹하는 사이렌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사이렌을 물리친 오르페우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헛된 권력이나 욕망이 아니라,
오직자기 자신을 찾고, 지성을 따르는 것이며, 올바른 사유와 실천의 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언급한 고대 철학자들이 생각한'죽음'을 잠시 적어본다.
얼마 전 후배의 죽음으로 슬퍼하던 내게 많은 힘을 준 글이다.
'반대되는 것에서 반대되는 것의 생성'은 마치 자연수의 행렬이 그렇듯이
무한히 진행되는 존재의 법칙인 셈이다.
홀수에서 짝수가 오고,
영원으로 회귀하는 죽음과 삶의 윤회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어쩔 수 없이 타고 갈 멈추지 않는 수레바퀴일 것이다.
죽음으로부터 삶으로, 삶으로부터 죽음으로 이어지는 무한의 과정이니,
삶과 죽음의 나뉨이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이성의 길은 영원한 것이고,
그 이성을 사랑을 통하여 나눔은 영원히 사는 것이니,
그에게 있어서 삶과 죽음의 갈림은 원래 없었다.
이성의 본질로서 '영원함'에는 '삶'과 '죽음'이 따로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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