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 2

커피향 그윽한 이야기 2011. 7. 12. 12:13


부산의 길은 참으로 울퉁불퉁 했기에 저는 저의 신발과 발을 자유롭게 해주기로 결정하고 마구 첨벙첨벙 거리를 활보했습니다.
아주 오래전 운동화가 비에 젖었을 때 그냥 빗물 속에서 놀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언젠가부터 깔끔이가 되서 그런 짓 절대 못했는데, 9일에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보았습니다.
이팀장님 얼굴에서 본 그 어린아이의 모습, 저의 어린아이 같은 심정..
이 모든 것들이 어쩌면..
아무 계산 없이 순수하게참가한 희망버스 대부분 참가자들의 마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도 다리를 건넜습니다.
역사의 도도한 물결의 흐름처럼 우리의 희망도 영도로 이렇게 흘러갑니다.
이제 김진숙 위원장님이 있는 곳까지는 1Km 정도의 거리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못 가게 하네요.
전경들이 딱 막고 있네요.


어느 분이 방송차 위로 올라가시네요.
김진숙 위원장은 크레인 위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어찌 평지에서 편히 이야기를 할 수 있냐며 차 위로 올라가는 백기완 선생님이었습니다.
"언론은 빛을 빛이라 말하고, 어둠을 어둠이라 말해야 합니다."
"나는 이제 죽을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내가 누울 자리가 어디인지 나는 이제 압니다. 그곳은 감옥입니다. 나는 이명박이 말하는 폭도입니다. 그들이 총과 칼을 들었을 때 나는 맨 손으로 저항했던 폭도입니다. 나를 잡아 넣으려면 넣으세요. 내가 누울 곳은 감옥입니다."

선생님이 적어주셨던 "활활"이라는 단어와 선생님의 말씀이 오버랩되면서
지금 우리에게는 서글픈 시대에 대한 탄식보다 분노와 연대의 의지가 필요함을 절감했습니다.


시위에 많이 참여하셨던 분이 그러네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요.
사태가 안 좋은 것을 감지한 몇 분들이 여자들과 노약자 분들은 뒤로 빠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최전선에서는 최루액을 계속 살포하네요. 실신, 부상자가 속출하네요.
급기야는 이정희 의원님이 최루액을 눈에 맞아서 쓰러졌다네요. 해동병원으로 갔다가 부산대병원으로 가셨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요. 저희는 무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물론, 저희는 선전포고를 하긴 했습니다.
"우리를 김진숙 위원에게 갈 수 있도록 열어 달라. 안 열어주면 우리도 행동에 들어가겠다."
그리고 한 행동이..
모래주머니를 쌓는 것이었습니다.
모래주머니로 계단을 만드는 사이 경찰들은 색소를 넣은 살수액을 뿌려댔으며, 최루액을 일부러 시민들 눈을 향해 쏘았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대한민국의 경찰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데 길을 막고 최루액을 마구 쐈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일방적으로 맞고 당하기만 했습니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희망버스에 탔던 분들이 질서를 유지하며 연좌했습니다.
50명 정도가 연행되었고, 심상정 의원까지 연행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사이 여기서는 밝힐 수 없는 분의 힘으로 한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가는 도중 할머니 2분과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나 동행했습니다.
배낭과 가방에 무언가를 한가득 들고 가시는데 무거워 보여 들어드리겠다니까 한사코 말리시더군요.
한진중공업 안 GS25 앞에서 짐을 풀어놓고 어르신들은 앉았습니다.
저희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음료수 몇 개를 사들고 어르신들에게 드렸습니다.
어르신들은 돗자리에 앉으며 그제야 짐을 풉니다.
떡, 빵 등을1인분씩 먹기 좋게 비닐로 포장해 오셨더군요.
방울토마토며 기타 먹을 것들로 가방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분들과 편하게 대화를 하는데.. 세상에나.. 본인들은 유가족 모임이라 말씀하시더니..
고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아버지와 용산참사 때 돌아가신 고 이상림 열사의 부인, 그리고 이한열 열사 어머니셨습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역사의 아픔이 아픔을 만나 마음 속에서는 피눈물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죄 없는 사람들의 죽음이 너무 헛되게 된 것 같아서 그분들께 죄송했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고 해야하나요.
그분들께 많은 빚을 우리는 지고 있습니다.
문재인님이 '운명'에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는 숙제가 있는 것입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기자분들 아지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아프리카 TV를 보는데 사태는 점점 나쁘게 돌아가더군요.
시위 현장에 계신 분들 몇 분께 사태를 말씀드리고, 이 곳 전경들의 움직임이나 이들 무전 내용도 전해줬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GS25 근처에 가보니 어르신들이 그냥 길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주무시다 잠자리를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왜 여기서 주무셨어요? 길가에서요."
저의 물음에 배은심 여사님이 말씀하시네요.
"내가 어찌 편히 잘 수 있겠어. 그래서 여기서 잤지"
세상에! 저는 또 이분들께 빚을 졌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저희 단체에서 일탈해 왔기에 이제 저는 밖으로 나가야했습니다.
저는 노컷뉴스 기자님의 안내로, 그 유명한 멍멍이 연대도 만나서 사진도 찍고,
어묵탕도 먹었습니다만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만 남아서 맛있어도 조금밖에 못 먹었습니다.

참, 그 전에 김진숙 위원님이 인사해 주셨답니다.
아주 즐거운 일이라면 인증샷을 찍겠지만, 아픈 몸 이끌고 나와서 인사를 해주신 분께 또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사진보다 더 오래 남을 모습을 머리 속에 꾹꾹 깊게 담았습니다.
어르신들 모습도 차마 사진 찍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 어디에서도 이제는 한 번에 알아뵐 수 있도록 제 가슴에 불도장으로 찍어놨습니다.


"어제 종일 비맞고 용역들이랑 싸운다고 몸살이 좀 심해졌습니다 그래도 밤새 비맞고 최루액맞고 길에서 밤을 보낸 분들 만큼이야 하겠습니까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김진숙 위원님의 쪽지를 받고, 저는 또 주책맞게 눈물을 흘렀습니다.
몸도 몸이지만 그리 마음 아파할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밤새 아프지 않으셨길 바랐는데..

결국 또 괴로워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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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 1

커피향 그윽한 이야기 2011. 7. 12. 11:55


우여곡절 끝에이틀 전에 희망버스를 타기로 결심 했습니다.
우리는 "희망버스 출판인 참가단"이라는 이름으로 9호차에 타고 갔습니다.
돌베개에서 빵과 '분노하라' 팔찌와 커피를 제공했고,
불광문고에서는 떡과 피로회복제와 박카스를 주셨고,
갈라파고스에서는 금일봉을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시간 잘 지키는모범 탑승객으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저희 버스는 1시 정도에 시청 프레스센터에서 일찍 출발했습니다.
우리 앞에 그 어떤 버스도 없네요.^^
그 사실을 알고 전부들 걱정을 합니다.
본의 아니게 우린 선봉이거든요..^^;;

저는 원래 차만 타면 완전 잘 잡니다.
하지만 권 팀장님의 말씀도 듣고, 인사들도 나누고, 주최 측에서 준비한 DVD도 보다가.. 졸다가.. 보다가... 그래도 눈으로 본 것인지, 눈꺼풀로 본 것인지 다 본 후에 본격적으로 잤습니다. ^^;;

음..^^;; 그 전날 잠을 좀 못 잤습니다.
너무 들떠 있었거든요.

잠시 자고 깨나니까 옆에서 트위터를 하고 계시는데,
몰래 보니까 한국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트위터 계정도 있더군요.
그래서 얼른 리스트에 넣고, 저도 트위터 몇 개 날리고~
시위대를 위한 경찰에의 대응법도 보고~
또 잤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아까보다도 비가 더 많이 오더군요.
내려가면 갈수록 비가 많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단디 준비하고 오라"던 김진숙 위원님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장화 준비할걸..흐


그세 희망버스 1호가 지나갔습니다.
슬쩍 봤는데,거의 나이 드신 분이었습니다.
헉! 그런데 다시 앞지르기 하다 뒤로 빠지는 우리 버스 운전기사님의 센스~!
덕분에 1호차 제일 앞에 앉아계신 백기완 선생님을 보았습니다.
멀리서 봐도 아우라가 마구 뿜어져 나오네요.

저는 다시 잤고, 7시 정도에 부산에 다 왔다는 권 팀장님 말씀에 깨났습니다.
부산역 앞에서 이 차장님이 깃발 든 모습을 찍어달라고 하고는 뒤돌아 계시네요.^^
앞모습은 마치 해맑은 어린아이 같았었는데 못 찍어서 아쉽습니다.^^
버스기사님의 추천 식당으로 가서 저희는 된장찌개와 밥을 먹고 부산역 광장으로 갔습니다.
가는 도중 다른 분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슬쩍 빠져서..
엔젤리너스에 계신 백기완 선생님께 글 하나 선물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활활 타오르라고 '활활'이라는 글자를 써주셨습니다.


인사회 깃발 아래로 가기 위해 엔젤리너스를 나오려는데
상냥하고 자상하신 양경숙 라디오21 본부장님과 시인 노혜경님을 만났습니다.
두 분이 저보고 더 예뻐졌다고 하네요.^^ 룰랄라~^^
두 분 다 머리를 자르셔서 더 젊고 싱그러워보인 날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그때 못 드렸네요.^^


인사회 깃발 아래로 억수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갔습니다.
모두 긴장되고 흥분된 모습들이었습니다.
연대 콘서트를 마치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저희는 영도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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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에 대한 두려움

커피향 그윽한 이야기 2011. 6. 22. 13:50

세계는.. ‘전 지구화’ 사회입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10여 개국 정도에서 ‘전 지구화’는 경제계의 엘리트와 정치적으로 이들을 지지하는 부류에게는 확실히 긍정적인 슬로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반면 같은 국가라 할지라도 이주자, 유색 인종, 그 밖의 이른바 ‘북반구 내의 남쪽’이라 일컬어지는 아웃사이더들은 주류에 포섭될 수밖에 없는 위기감과 일자리 부족 그리고 날로 심각해지는 주변부화를 염려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재미있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늘 그래왔듯이 아웃사이더들의 염려는 곧 엘리트 집단의 염려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세계 곳곳에서 소수에 대한 인종 학살의 충동이 생겨난 걸까요?
어느 한 집단의 사회 구조와 동원 방식이 속성상 자신과 비슷한 다른 사회적 범주의 말살을 요구할 때 그 집단의 정체성은 약탈적 정체성이라고 합니다. 약탈적 정체성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공동체를 말살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경우 다수의 정체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약탈적 정체성은 때로는 종교의 이름으로 또 때로는 언어적 · 인종적 혹은 그 외 다수성의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달리 말하면, 다수와 소수의 역할이 역전될 위험에 처할 때 약탈적 정체성이 형성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0세기에 종족의 순수성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한 분노가 가장 잘 드러난 예는 바로 나치가 동원한 ‘독일성’입니다. 독일성은 특히 유대인을 겨냥했고, 그 외에 다른 소수자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나치 프로파간다(어떤 것의 존재나 효능 또는 주장 따위를 남에게 설명하여 동의를 구하는 일이나 활동. 주로 사상이나 교의 따위의 선전을 이른다)에서 유대인은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위협으로 묘사되었습니다. 특히 암세포 같은 존재라고 비난했습니다. 특정 인종 집단을 하등 인간의 지위로 끌어내리면 집단 학살은 쉬워집니다.

21세기로 진입하면서 새로운 세계가 부상했습니다. 하나는 국제적 차원의 힘의 균형, 군사 협약, 경제 동맹, 공동 협력 기구 등과 같은 척추 중심 체제로 운영되는 척추적 세계입니다. 다른 하나는 법률이나 계획을 통해서가 아니라 연합과 기회를 통해 세포들을 증식시키는 세포적 세계입니다.
부상하는 세포적 세계는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한 면은 오늘날 우리가 테러리즘이라고 표현하는 세포적 세계의 어두운 측면입니다. 그러나 세포 형태를 통해 조직된 새로운 원거리 정치는 깡패 자본가나 정치적 테러리스트들의 독점물이 아닙니다. 글로벌 사회의 가장 흥미로운 진보 운동, 예컨대 국가 및 시장 공간으로부터 독립된 제3의 순환 공간을 모색하는 운동들도 조직 운용에서 역시 이 모델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 운동을 우리는 풀뿌리 전 지구화 운동이라고 일컫습니다.

저자는 이 풀뿌리 전 지구화 운동에 집중합니다. 이 운동들은 한 가지씩 차례차례 문제를 해결하고, 한 사람씩 혹은 한 단체씩 연합을 형성하고, 차근차근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봅니다. 이 운동들은 종족 학살과 이념 학살이라는 전 세계적 흐름, 국소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위로부터의 폭력에 맞설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겁이 많아서일까요. 저는 혁명을 바라고 분노하길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풀뿌리 전 지구화 운동 같은 것이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행히 이런 운동들의 행동반경은 매우 넓게 퍼져 있고, 관련 단체의 수도 꾸준히 증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은 우리대신 집권자들을 지켜보고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곳들입니다. 가입하면 좋겠지요..
'공공미디어연구소' '미디어스'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언론시민연합' '진실을 알리는 시민'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참여연대' '학벌 없는 사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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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사

커피향 그윽한 이야기 2011. 6. 21. 15:11


러시아 혁명사.

예전에 저희 오빠가 읽던 도서인데 제가 갖겠다고 우겨서 아직까지 소장하고 있는 책입니다.

러시아 혁명사를 다시 꺼낸 것은..

최소한의 권리도 지킬 수 없는 이 상황을더이상 참지 말아야할때인 것같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꼭 필요한 이론적, 역사적 준거점이 무엇일까 찾다가 혁명이라는 단어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연대를 중시하기 때문에 트로츠키가 강조한 혁명전략인공동 전선을 지지합니다.

확실히 트로츠키의혁명외교는 독일혁명을 일보전진 시킨 것입니다.

트로츠키는 말합니다.

"행진은 따로따로 그러나 파업은 함께."

끊임없이 공부하는 레닌도 무척 존경합니다.

레닌은 자본주의를 무시함에 의하여 현실을 유리시킨 이데올로기로 화한 나로드니끄(인민주의자)와,

농민을 경시하는 외래이데올로기, 멘셰비즘(소수파,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온건파의 사상)과의 사이에서

러시아의 현실에 꼭 들어맞는 러시아혁명의 전략과 전술을 창출했죠.

즉, 레닌은 나로드니끄에게서 그 혁명적 행동력을 섭취하고 농민중시를 계승했습니다.

여튼 뛰어난 지도자들과 전략가들로 이루어진 소비에트정권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으로

농민, 노동자 등 근로대중에 의해 10월 혁명이 일어났죠.

10월혁명의 결과는 트로츠키의 예언이 적중하여

프로레타리아에 의한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수행되고 공업에 관한 한 사회주의가 실현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평화를 획득할 수 있었던 소비에트 정권은 3년 정도에 참혹한 내란에 고통받아야 했죠.

볼셰비키정권을 자신들의 정부라 생각했던 노동자계급은 계속되어 온 내란에 도탄의 고통을 받게 되고,

당초의 정세가 냉각되기 시작하죠.

권력은 극소수의 볼셰비키당간부의 손에 장악되고 있음이 명백하게 되어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당간부의 독재라는 것이 알려지자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생활상의 불만은 심각화되어 갔죠.

이에 트로츠키는 노동자계급의 불만을 완화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관심을 높이고

소비에트정권과 프롤레타리아와의 일체화를 기도하려고 했죠.

하지만 레닌은 트로츠키의 견해를 배격합니다.

레닌에 의하면 소비에트정권은 프롤레타리아의 정권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정권입니다.

그러므로 소비에트정권을 구하는 길은 노동자계급에게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에게 양보하는 것입니다.

러시아는 4년간의 전쟁에서 경제가 엉망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레닌과 트로츠키의 다른 점을 알아야 합니다.

레닌은 러시아혁명을 우선으로 두고 세계혁명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했습니다.

반대로 트로츠키는 세계혁명으로부터 시작한 러시아혁명을 생각했죠.

그래서 소비에트정권에게 있어서 세계혁명은 사활의 중요성을 갖는 것으로 되었기 때문에

볼셰비키는 1919년 세계혁명에 대한 전략과 전술을 연마하죠.

사실 세계혁명으로 가는 길은 독일에 의해 결정될 운명이었습니다.

그이유는, 4년간의 전쟁에 의해 혁명에의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는 것이고,

독일에서 성공할 경우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내의 제민족은 독일의 뒤를 따라

중부 유럽일대가 혁명의 노도에 휩쓸릴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으로부터 스칸디나비아를 석권하고 나아가

아시아 10억의 피억압민족을 궐기 시키는 것은 필연이었죠.

그러나 독일혁명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혁명의 주체인 독일사회민주당은

개전과 동시에 평화정책에 의해 제국주의독일에게 혼을 팔아버렸기 때문에

진정한 혁명정당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며,

독립사회민주당내에서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중심으로 결성되었던 스파르타쿠스단이

대중적 기반을 못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말이 길어졌나 모르겠습니다.

사진 찍힌 책들 다 언급하려 했는데요..^^

다음부터는 짧게 쓸게요.^^

박노자씨는 대한민국 대학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대학교수는 또 하나의 코리안 드림이고 또 하나의 특권집단이라고요.

대학은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라고요.

우선, 상아탑의 노예라고 표현한 강사들,

박사과정을 갈망하면서도 ‘돈과 빽’ 때문에 좌절하는 젊은 인재들을언급했네요.

교수집단이 실제로 한국식‘관료주의적 재벌 자본주의’의 생산관계를 결정한다고 했네요.

쯧.가여운 대한민국..

시궁창에 쳐박아 놓은 듯한 대한민국을 위해무엇을 어떻게 해야현명한 것인지

박노자씨의 말로 생각해 보려 합니다.

"한국 정치인들이 정말 이토록 중세적일까?

그렇다기보다는 중세적인 통치방식을 왜곡해 선별적으로 이용한다고 봄이 더 옳을 터인데,

이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궁예나 견훤을 투표로 그 위치에 있게 하거나 물러나게 할 수도 없었을 텐데,

표에 목숨이 달린 현대판 '궁예'나 '견훤'들을 왜 간단한 투표로 퇴출하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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