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를 보십시요!

커피향 그윽한 이야기 2011. 12. 9. 09:43


사진출처 로이터 연합

볼리비아는 FTA를 맺지 않았지만 FTA의 핵심독소 조항인 ISD(투자자-국가 소송제)와 민영화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민중이 뭉치면 이긴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민영화 시작
볼리비아는 군사독재 하에 있다가 1982년 민주주의를 쟁취하게 되었으나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당시 대통령인 빅터 파즈 에스텐소로는 IMF를 받아들이고 1985년 민영화법을 제정하여 국영 광산을 사유화하여 광산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했습니다. 이에 광산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생존권 쟁취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나 군 병력에 저지되었고, 이후 15년 정도 볼리비아의 노동운동은 해체 위기를 겪어왔습니다.

체 게바라
그 전에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있습니다.
1966년 피델 카스트로와 결별한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는 남미대륙 혁명운동의 거점을 마련하고자 볼리비아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게바라가 이끄는 혁명군 게릴라들은 농민층의 지지를 얻지 못하였으며 광산노동자와의 연대에도 실패함으로써 1967년 미군의 지원을 받은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체포되어 사살되었습니다.

ISD와 민영화의 폐해를 보여준 볼리비아
광산 노동자들을 패퇴시킨 정부는 석유, 가스, 항공, 철도, 전화 등 모든 국영기업을 사유화시켜 버렸습니다. 국민들의 소득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고,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늘고, 복지는 점점 삭감되었습니다.
2000년 볼리비아의 두번째 큰 도시 코차밤바 주의 수도를 사유화한 Aguas del Tunari (미국 벡텔사가 자회사를 통해 사실 상 소유)는 물값을 300% 정도 올렸습니다. 물값이 비싸지자 주민들은 빗물을 받아서 생활을 했습니다. 이때 Aguas del Tunari는 ISD를 이용해 볼리비아 정부를 협박, 결국 정부는 빗물 받기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수도공급을 맡은 Aguas del Tunari에게 16%의 수익성을 반드시 보장해주면서 40년간의 계약기간을 보장해주기로 했습니다. 볼리비아는 네덜란드와 맺은 무역협정에서 ISD 조항을 넣었는데, 벡텔은 네덜란드 지분을 이용해 이 협정의 ISD를 활용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대적인 대중 저항이 일어났습니다.

코차밤바 시위
대중들은 민주적 토론을 거쳐 정부의 물 사유화를 백지화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정부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시위는 계속 이어지고 급기야 2000년 4월 8일 볼리비아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시위 지도부를 체포했습니다. 투쟁에서 다수의 사망자가 생겼습니다. 분노한 민중들은 강력한 노농연대를 구축해서 다니어마이트를 터트리며 수도로 진격하며 정권퇴진투쟁에 돌입합니다.
결국 폭력으로 진압하려던 정부는 백기를 들며 물 사유화를 철회했습니다.

2001년 다국적 기업 벡텔은 $2,500만 달러 이상의 손해를 입었다며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고소하였습니다.2006년 1월에 국제 투자분쟁해결 센터(ICSID)에 의해서 벡텔에게 유리한 사법관할권 판결이 났습니다.
이에 치열한 항의시위가 일어났으며 결국 벡텔과 또다른 국제적 파트너들은 볼리비아 정부에 대한 소송을 30센트에 합의하고 끝냈습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2001년 8월 우고 반세르 대통령은 암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당시 부통령이던 호르헤 키로가 직위를 계승했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 산체스 데 로사다는 부정 선거를 치렀습니다. 또한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 정부는 모랄레스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으면 원조를 중단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 협밥으로 모랄레스의 지지도는 오히려 늘어났으나 결선투표에서 간소한 차이로 2위를 했습니다

볼리비아의 항쟁
볼리비아는 2000년, 2003년, 2005년의 큰 항쟁이 일어났으며, 각각 물전쟁, 가스전쟁(1차, 2차)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2003년과 2005년의 투쟁은 대통령의 퇴진을 이루어냈습니다.
계엄령까지 선포했던 로사다 대통령은 결국 2003년 가스까지 민영화하려다가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2003년 당시 부통령이었던 카를로스 메사는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되었으나 '에너지산업 국유화'를 놓고 수주간의 대규모 시위로 수도가 마비 상태에 빠지자 사임을 하게 됩니다.
또한 2005년 황급히 소집된 의회에서 대법원장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 벨체가 대통령이 되었으나, 정치체제의 악화로 의회의 전면재구성과 2005년 12월 4일 대통령 선거를 동시에 실시하도록 허용하였습니다.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세 명의 대통령이 연거푸 퇴진을 했으며 2005년 최초로 원주민인 에보 모랄레스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득표율이 과반을 넘으면서 결선 투표 없이 바로 대통령이 된에보 모랄레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자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공공요금이 한꺼번에 오르면 서민은 죽으라는 말!
서울시의회 건설위원회는 지난 5일 하수도요금을 내년 3월부터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올리는 '하수도 사용 조례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상수도 요금도 내년 3월부터 평균 9.6% 오르는 '수도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이미 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를 통과했습니다.
도시가스요금은 1년 전보다 14.7%나 올랐습니다.
올 한해 전기요금도 9.6%나 올랐죠.
공공요금 인상시기를 최대한 분산시키겠다던 정부의 의지는 정치권의 혼란과 함께 실종됐습니다.
서민들은 정말 살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민들 죽으라는 정책은 시민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입니다.
볼리비아를 보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