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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 Crimson - Islands (71'')
가을이 무르익었어요.
어젯밤 거센 비바람으로 인해 나뭇잎들이 떨어지는데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생각나더군요.
그 소설처럼..
그리고 여느 가을처럼...
조만간 나뭇잎들이 다 떨어지겠죠.
하지만 우리에게 음악과 '사랑'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삶의 생동을 얻을 수 있겠죠.
우리에게 음악과 사랑은 항상 사라지지 않고 희망을 주는 마지막 잎새겠죠.
음.. 제가 원래 가을은 아주 조금 타요.
모든 계절 다 타는데..가을만은 조금 타요.^^
가을날엔 가볍게만 쓸쓸할 뿐이네요.
단지 세상을 담담한 눈으로 보게 될 뿐이네요.
그 이유는.. 아마도 자연의 길에 순응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꽃이 피면 지고,
무언가 태어나면 사라지고..
그리 변하는 것이 자연의 길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때문일거네요.
해도, 별도, 달도, 우주도 다 자연의 길을 따라 가는 것이고,
저도 그 흐름에 맞추어 가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하게 되기 때문일거네요.
저는 이러한 가을이면 항상 즐겨듣는 곡이 있어요.
King Crimson의 Islands입니다.
15년전 가을날, 휴대용 시디피로 이 곡을 들으며 걷는데
나뭇잎이 바람이 불 때마다 떨어지더군요.
그것을 보니 제 마음속에도 나뭇잎이 자꾸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마음 속 나뭇잎이 떨어지니 많이 허전하고 허탈하고 쓸쓸하대요.
그 후로 이상하게 가을만 되면 그 곡을 찾아듣게 되곤 합니다.
위 앨범자켓을 보시면 우주공간의 모습이 담겨져 있지요.
자켓같이 적막하고 광활한 우주공간에 홀로 떠다니는 외로운 섬같은 존재!
그 존재가 '나' 개인이라는 생각이 들면 지독하게 외롭죠.
아마도 그와 같은 마음 상태를 나타낸 자켓이 아닌가 싶어요.
꽉 찬 듯하면서도 공허한 우주.
무질서할 것 같으면서도 조화로운 우주.
그리고 그 속에서 정처없이 유랑하는 '섬'같은 '나'. ....'나'
바짝 마른 잎들이 내 발밑에서 뒹구는 것을 바라보며,
거센 바람결에 허공으로 휘날리는 낙엽들을 바라보며,
저는 오늘 어느 가을처럼 우주의 모습이 담긴 자켓을 열어 Islands를 걸어놓았어요.
이 앨범은 실은 일부 평론가들에게 그리 좋은 평을 받지 못했어요.
화려하고 혁신적이기까지 한 그들의 사운드에서 한참 멀어진 앨범이며,
항상 있어온 멜로트론의 강렬함과 웅장함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그렇네요.
하지만 그들의 실험정신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프리재즈적 요소가 가입되어 아방가르드적 강렬함을 지니고 있는 앨범이며,
우주의 카오스적 공허함을 느낄 수 있으며,
들을수록 난해한 앨범이기도 합니다.
우선 첫곡 Formentera Lady를 들어보면요..
도입부는 낮은 첼로 소리로 시작되요.
쫘악 가라앉는 첼로의 매력적인 저음이 제 심장에 노크를 하며 앨범은 문을 엽니다.
그런데요, 중간정도부터는 공포분위기로 바뀌어요.
여성의 귀신소리같은 것이 나옵니다. 흐....ㅡㅡ;;
마치 황병기와 홍신자의 미궁같은 을씨년스러운 곡이네요.
이어서 드럼 비트와 베이스 워킹이 멋지고 기타소리가 현란한 두 번째 곡을 지나면,
브라스 소리가 주를 이루는 프리재즈적인 3번곡이 흐릅니다.
소울풀하며 펑키하기도 한 4번곡이 지나면,
다섯 번째 곡은 현악기와 목관악기가 부드럽게 감성을 터치합니다.
전 곡들과는 상반된 분위기입니다.
이렇게 다섯 곡이 전부 분위기가 달라요.
하지만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언제 다음 곡으로 넘어갔는지 모르게 곡들이 잘 연결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Islands가 나옵니다.
Islands는.. 절대적인 외로움, 고독,
그 속에서 묻어나오는 깊은 공허감이
서정미의 형식으로 존재하고 있는 곡입니다.
내심장 바닥 끝에 있는 슬픔과 고독의 찌꺼기까지 다 꺼내서 펼쳐지게 만드는 곡입니다.
Peter Sinfield의 가사와
너무나 소박하여 감성이 나와 더 가깝게 소통되는 보컬,
존재와 무존재가 함께 존재하는 선율들은
온 우주 속에 존재하는 고독감을 따라 휘감돌다 결국 내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며 마감을 합니다.
아무리 진리를 탐구하고 내 자신으로의 여행을 떠나도
결국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평상심平常心이란 것을 그들은 말하는 것일까요.
이 가을,
자연의 길..우주의 길을 진정으로 느끼고자 하는 분들과
가을에 흠뻑 취하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해
이 곡을 추천해봅니다.
-Line-Up
Robert Fripp : Guitar, Mellotron, Peter's Pedal,
Harmonium & Sundry Imple Ments
Mel Collins : Flute, Bass Flute, Saxes & Vocals
Boz : Bass Guitar, Lead Vocals & Choreography
Ian Wallace : Drums, Percussion & Vocals
Peter Sinfield : Words, Sound & Visions
-Featured Players
Keith Tippet : Piano.
Paulina Lucas : Soprano.
Robin Miller : Oboe.
Mark Charig : Cornet
Harry Miller : String Bass
-List
1. Formentera Lady
2. Sailor's Tale
3. Letters
4. Ladies of the Road
5. Prelude: Song of the Gulls
6. Is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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